느껴지는 바, 배우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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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연기하다 스님 될 뻔한 배우… 속세에서 道 닦습니다
순탄치 않은 길, 도(道) 닦은 세월이 길었다. 이미 스물여섯 살 때 출가 아닌 출가까지 감행했다. 부산대 철학과 재학 시절, 우연히 교내 동아리 포스터를 보고 연극계에 입문해 ‘예술가병에 걸려 미친 짓하고 다니던 때’였다. “머릿속에 삐딱이가 들어앉아 있었어요. 옷을 몽땅 뒤집어 입고 술집에 들어가고, 쥐뿔도 없으면서 어디서 주워들은 말 몇 마디를 내 신념인 양 악다구니 쓰고…. 굶어 죽기 딱 좋았죠. 결핵에 혈변에, 이러다 폐인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느 날 남포동 뒷골목에서 무서운 형님을 만났죠.”
–누구였나요?
“하숙집 주인 아들요. ‘조기 사망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면서 절을 하나 소개해 주더군요. 가서 심신을 추스르라는 거였죠. 거역할 수 없어서 보따리를 쌌어요. 유도 선수 출신이라….”
부산 현엄사였다. “동네 야산에 있는 시골집 같은 암자였어요. 스님께 꾸벅 인사를 했더니 ‘고시생이 와서 하숙비 준다 해도 거절했는데, 당신은 불법의 연이 있어 보이니 받아주겠다’고 하시더군요. 첫날이니 불은 지펴주겠지만 내일부터는 다 알아서 하라고요.” 처절한 반성 시간이 시작됐다. “술에 절어 있는 몸이라 아침 5시에 일어나기도 힘들더라고요. 밥 짓다가 쌀을 조금 흘렸는데 ‘아귀들은 그 쌀알 하나를 못 삼켜 고통받는 걸 모르느냐’고 혼나고요.”
–깨달음이 있었습니까.
“암자 천장이 낮았어요. 아침 공양을 준비해 밥상을 들고 들어가다가 쿵, 머리를 찧었죠. 그때 스님께서 딱 한마디 하셨어요. ‘더 숙여라.’ 무릎으로 기다시피 들어가 밥상을 내려놓고 일어서다가 다시 쿵. ‘더 숙이라카이!’”
더 숙이라는, 더 배우라는 호통. 평생 화두가 됐다. “그날부로 스님을 스승님으로 모셨습니다. 다른 불자들은 저를 ‘작은 스님’으로 불렀어요. 밤마다 김성동 소설 ‘만다라’를 읽으며 출가를 심각하게 고민했죠. 딱 한 가지, 혼자 되신 어머니가 눈에 밟혔어요. 손주도 안겨 드려야 하는데….” 결국 한 달 뒤 속세로 향했다. 그런 제자에게 스승은 ‘적정’이라는 법명을 내려줬다.
–무슨 뜻입니까.
“고요하고 고요하다. 천수경 ‘준제진언’(准提眞言)에 나오는 말이에요. 세상을 바로 보려면 고요해야 하죠. ‘헛짓 말고 입 다물고 계속 공부하라’는 뜻 아니었을까요.”
–배고픈 시기가 길었습니다.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가 나오니 그게 아니더군요. 돈은 더럽다, 돈이 최고다, 이 이분법에 오랜 세월 빠져 있었는데…. 어디 세상사가 그렇습니까.”
–돈, 의리 맞던가요?
“돈 많은 사람들은 많이 뜯겨서 그러는지 잘 안 빌려줘요. 의외로 어렵게 지내본 분들이 결정적일 때 도움을 주시더라고요.”
자비(慈悲). 불교의 핵심 가치일 것이다. “극단 시절 단돈 500원에 칼국수를 대접에 넘칠 듯 퍼주던 문현시장 혜민 엄마, 수년간 대가 없이 회사 직원 머릿수만큼 연극 티켓을 사 주던 건축 폐기물 업체 사장님, 입고 있던 겨울 파카를 펼쳐 칼바람 막아주던 촬영장의 어린 스태프들…. 이분들 덕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죠.” 생애 최초 자비는 모친에게서 목격했다. “정말 이상한 광경이었다”고 했다.
–어떤 광경이었나요?
“아버지가 방랑기가 심했어요. 훌쩍 집 나가면 어머니가 짐 싸 들고 추적에 나섰죠. 제가 춘천에서 태어났는데, 초등학교는 서울 청량리, 고등학교는 마산에서 나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똑같이 ‘떠난 서방’ 찾아 헤매다 무일푼 된 웬 여자를 다리 밑에서 만난 거예요. 어머니가 주섬주섬 짐을 풀어 옷가지를 건네시더라고요. 생면부지에, 우리 사정이 더 나을 것도 없는데…. 걸인을 집에 데려와 손수 목욕시키고 밥까지 차려주신 적도 있죠.”
–왜 그러셨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 대접’이었던 것 같아요.”
사람 다 똑같다. 배우 이재용이든 삼성그룹 이재용이든, 사바세계의 우환에는 예외가 없다. 그럼에도 “태도에 따라 삶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고 그는 믿는다. 경험 덕분이다. 번뇌와 그 받아넘김의 과정을 최근 책(‘그날 나는 붓다를 보았다’)으로도 펴냈다. “일 안 풀리고 힘들면 ‘내 인생 왜 이래’ 싶잖아요. 역경계(逆境界)가 나타날 때 그 자체를 공부거리 삼아야 한다는 걸 이해를 못 했어요. 겪어보니 모든 인연, 심지어 악연조차도, 같은 실수 또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평안하십니까.
“배우는 비정규직이잖아요. 쪼들리죠. 큰아들이 호주에서 의대를 다녀요. 목돈이 필요하니 1년에도 몇 번씩 고비가 와요. 대출은 꽉 찼고, 기한은 조여오고, 자존심은 구겨지고…. 사람 할 짓이 아닌 거예요. 한 달 반 만에 몸무게가 13㎏ 빠진 적도 있죠. 그냥 팩트만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결국 해결될 테니 문제 앞에서 감정을 빼자.”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쉽지 않죠. 숨이 열쇠 같아요. 갑갑하면 숨 크게 들이쉬라고 하잖아요. 하루 2~3분이라도 좋으니까 가만히 눈 감고 내가 숨을 어떻게 쉬고 있나 집중해 보세요. 그동안에는 고민이 있을 수가 없어요. 숨 들어왔네, 숨 나갔네. 오만가지 생각이 숨 하나로 모이는 거죠.”
“눈 감고 하는 명상이 익숙해지면 눈 뜨고도 가능해진다”고 했다. 원망을 떨치고 감사를 깨닫는 일. “조연이라는 말, 한편으로는 서운함이 있었죠. 그래도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힘들고, 처자식 먹여 살릴 만큼 벌 수만 있다면 ‘이게 이번 생에서 내가 경험해야 할 대본이구나’ 싶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에서 주연이잖아요.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는 것도 보이지 않은 수많은 호의 덕인데, 건방 떨면 안 될 것 같아요.”
–목표가 있으세요?
“집이 부산이라 서울 오갈 때 김해공항에 자주 갑니다.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청소하시는 여사님들이 ‘엄마야~ 어쩐 일입니꺼~’ 웃으면서 인사해 주세요. 꼭 대단한 인연이 아니어도 잘 찾아보면 가식 없는 웃음, 보상이나 대가 바라지 않는 사람들의 선함이 있습니다. 그런 순간을 조금씩 늘려가고 싶어요. 부처님이 세상에 많이 계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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